영화 <메멘토>리뷰 및 비평 레포트 / 결말포함
메멘토, 메모 속 삶을 걷는 남자
[영화 리뷰 & 비평레포트]
※ 본문에 스포일러 포함됨, 주관적인 의견 포함
영화 <메멘토:리마스터링> 한국판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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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 주변에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 있으면 ‘메멘토’라고 부르는 밈(internet meme;인터넷의 문화나 유행)이 존재했었다. 당시 어린 나이였기에 어원도 몰랐을 뿐더러 현대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밈인 탓에 이는 점점 희미해지는 추억의 일부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메멘토’를 보게 되면서 나도 주인공 레너드와 함께 과거로 역행하게 되었다.
영화의 첫 씬(scene)은 어느 한적한 폐건물 안, 한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비추는 샷(shot)과 함께 시작된다. 폴라로이드 사진은 바람에 말릴수록 선명해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레너드가 사진을 흔드는 행동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사진이 선명해지기 보다는 점점 인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뒤, 레너드는 사진을 다시 카메라에 밀어 넣고 파인더를 눈에 가져다댄다. 이는 단순히 사진을 찍기 위한 준비 동작으로도 보일 수 있으나, 앞서 점점 흐려졌던 ‘사진’이나 레너드가 필름 배출 부분으로 사진을 투입하는 ‘행동’을 통해 해당 씬의 전개가 ‘역행’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후 바닥에 난자한 피 웅덩이가 어딘가로 다시 빨려 들어가고, 떨어져 있던 탄피가 멀쩡한 총알이 되어 총으로 돌아가는 등의 샷을 통해 앞선 샷들에서 했던 짐작을 확실시하였다.
‘메멘토’는 도입부, 다시 말해 첫 씬 속 폴라로이드를 흔드는 샷부터 주인공의 시간이 거꾸로 갈 것이라는 점을 암시해주었다. 더불어 레너드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제시한 뒤 현재 시점으로 샷을 되감기하며 역행, 죽은 테디와 레너드 두 사람의 총성 직전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중이 ‘왜 이 남자는 살인을 한 것일까?’라는 의문부터 품은 채 극의 시작을 마주하게 했다. 그로 인해 나 또한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 ‘레너드’처럼 중심 갈등을 풀기 위해 영화 속에서 이미 발생했던 사건이나 기록에 의존하며, 현재 시점에 도달할 때까지 영화를 보는 내내 과거의 레너드가 미래의 자신을 위해 남겼던 ’메모‘와 ’사진‘을 짚어가게 되었다. 즉, 영화 속 화자와 관중이 동화되도록 샷들을 편집 및 구성했다.
영화는 컬러의 ‘중심플롯’과 흑백의 ‘보조플롯’으로 나뉘어있다 중심플롯은 주인공 ‘레너드 셸비’의 이야기가 주이며, 첫 씬에서 암시했듯 결론부터 역순으로 진행된다. 반면에 흑백의 보조플롯은 레너드보다는 ‘새미 쟁킨스’라는 주인공과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중심플롯과는 달리 시간 순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메멘토의 두가지 플롯은 씬마다 교차되며 영화를 진행시키는데, 결국 결말 부근에서, 한 교차점을 통해 두 플롯은 맞물린다. 가장 인상깊었던 씬이었다.
주인공 레너드 셸비와 새미 쟁킨스
결말에 다다르기 전, 주인공을 둘러싼 몇몇 조력자를 의심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존재했는데 그 중 하나가 극의 전개를 담당하는 ‘사진 메모’였다. 영화의 전반에서 중반부까지 ‘나탈리’에 대한 주인공의 메모는 지워져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그녀에게는 레너드처럼 사랑하는 이가 살해당했던 아픔이 있다는 점 때문에 극 최초부터 등장했던 테디보다 신뢰도를 얻기가 쉬우나, 나탈리의 사진 뒤편에 볼펜으로 무언가를 썼다가 지운 흔적은 그녀에 대해 불신을 갖게 한다. 그러나 극 전개를 통해 나탈리에 대해 썼던 ‘믿을 수 없다’고 적은 메모는 그가 직접 당해서가 아닌 테디의 입을 통해 들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임이 밝혀진다. 오히려 테디의 사진에 있던 ‘그의 거짓말을 믿으면 안된다’는 메모를 보게 되어 레너드가 나탈리에 대한 테디의 말을 믿지않고 지워버린 것이었다는 점이 나오면서 불신은 종식된다. 물론 이또한 반전을 위한 준비였으며 이후 그녀 또한 레너드를 이용했음은 물론이고 그와 그의 아내를 모욕했었다는 점이 드러나지만 말이다. 영화를 결말까지 보고 다시 해당 씬을 살펴보니, 두 거짓말쟁이에 대해 사실을 적은 메모를 함께 비추고, 그 중 나탈리의 것을 지운다는 점부터 가짜 조력자들의 운명(테디의 죽음, 동료로 인식되는 나탈리)을 암시하는 구성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력자 테디와 나탈리
‘메멘토’ 속 가장 큰 반전 중 하나는 레너드가 입에 달고 살았던, 그리고 보조 플롯의 전개를 이끌어나가던 ‘새미’의 이야기가 사실은 본인의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아내는 사실 성폭행 사건이 있던 날 밤 살아남았지만, 사건 이후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 레너드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인슐린 주사를 과다투약하다 사망한 것이다. 아내가 자신 때문에 죽었다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레너드는 기억을 스스로 조작해 아내는 성폭행 당해 죽었고 인슐린 주사 얘기는 자신이 상담했던 새미 부부의 이야기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기에 이른다. 실제 새미는 그저 보험금을 노렸던 일개 사기꾼일 뿐이었다. ‘레너드’가 ‘새미’와 동일인물이라는 복선 요소는 레너드가 수화기 너머 누군가에게 새미의 최후를 말해주는 씬에서 발견된다. 새미가 요양 센터에서 휠체어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는 샷에서 다음 장면으로 전환되기 직전, 1초도 채 안되는 찰나의 순간에 새미의 얼굴이 레너드의 얼굴로 바뀌는 부분이다. 아주 잠깐이었기에 잠시 한눈을 팔기라도 했다면 놓치기 쉬운 장면이었다.
카메라 앞을 지나가면서 장면을 전환하는 경우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거나, 지나가는 그 잠깐동안 일어난 사건의 결과를 보여주기도 하는 연출 기법이다. 그리고 메멘토의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은 이를 주인공이 자기 방어를 하고 있음을 암시하기 위해 사용한다. 이처럼 화자의 상황을 크게 반전시킬 복선 요소를 영화가 누구나 알아보기 쉽게, 친절하게 제시해주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면, 관중이 영화의 소소한 부분들까지 더욱 집중하도록 하는 효과까지 부를 수 있다.
‘메멘토’는 파편화된 샷들에 ‘흑백’과 ‘컬러’로 전개 진행방식을 나누는 독특한 편집법을 사용함으로써 몰입감을 극대화시킨 영화이다. 주인공 레너드는 10분이라는 짧은 시간밖에 기억이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기록하고,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에 문신까지 감행해가며 메모한다. 그 기록들에 대한 레너드의 신뢰는 맹신에 가깝지만, 10분이라는 짧다할 수 있는 순간의 기록들이기에 실제보다 단편화, 파편화 된 정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든 관중 또한 레너드와 함께 그의 메모에 의지해 영화를 감상하게 된다.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 샷들이 순차적으로 재조합되어 나온 전개가 아니라 관객들이 직접 재조합하며 영화를 감상해야 하기 때문에 능동적인 관람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았나싶다.
테디는 ‘난 ~사람이었어,’ 말하는 레너드에게 항상 이야기한다. ‘그건 과거의 너지 현재의 너가 아니야.’ 영화를 보면서 가장 깊이 생각하게 되었던 문제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기록한 문장과 과거의 기억에 의존하며 앞으로의 행동을 미리 구상하는 레너드는 자아가 없는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기록으로 삶을 계획해나가고자 결심한 것 또한 레너드의 자체적인 결정이고, 의지라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작중 살인을 꺼려하는 모습이나 나탈리의 맞은 모습에 동정심으로 선뜻 도와주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기본적인 심성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고 느꼈다는 점이 그 이유이다.
나는,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 삶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학력이나 주소, 국적, 성별 등의 형식적인 요소와 레너드가 의지하는 실체주의적 요소, ‘기억’ 중 어느 것을 중요시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고민과 함께 메멘토 감상 및 분석을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