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PD와의 대화,

나와의 대화



< 인터뷰, 그리고 사람 >

인터뷰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서로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는, 변화무쌍한 사람의 마음을 읽는 콘텐츠 제작 방법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라는 커다란 범위 뿐 아니라 그 안에서 같은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복잡하고 다양한 심리들이 존재합니다. 홍경수 PD님의 예능 PD와의 대화는 이러한 인터뷰를 주 콘텐츠로 잡아 예능미디어계에 한 획을 그은 여러 들을 접하되 단순히 언론과 방송사에 대한 정보 취득을 목적으로 두지 않고, 심층인터뷰의 일환으로써 PD들이 현장을 발로 뛰며 얻은 경험의 의미를 파악하고 가르쳐주고자 합니다.

 

< 당신은 어떤 연출이 끌리는가? >

청소년 시절, ‘하이킥 시리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트콤을 즐기지 않던 제가 처음으로 챙겨본 시리즈이자 기존의 것들과는 달리 간첩’, ‘살인등의 파격적인 소재들이 처음으로 등장해 화제였습니다. 특히, 시리즈 중 두 번째인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교통사고로 인한 주인공의 죽음이라는 결말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시트콤하면 자연스레 유쾌하고 가벼운 결말만을 떠올렸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하이킥 연출자가 너무 시청자의 니즈(needs)가 아닌 자신의 가치관만을 반영한, 이기적인 결말을 연출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시청자를 으로 생각하고 PD의 제작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았던 저의 오만이었습니다. 하이킥의 연출자 김병욱 PD는 규격화된, 단체화된 것보다 자유로움을 중요시합니다. 때문에 제작 자율성을 해친다고 여긴 심의와 연기자 두 가지를 연출에 있어 중요시했습니다. 심의를 규정하는 방송위원회의 부름은 과감하게 무시했고, 스타 연기자를 부르면 촬영장 내 힘의 균형에서 피디가 약화되고 위축될 것을 우려해 신인을 캐스팅한 것입니다.

또한 그는 연출을 위해 자신과 가장 맞는 기획법을 이용했습니다. 바로 은둔 지향성 사고입니다. 다소 억압된 분위기의 회의가 아이디어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찾아오곤 합니다. 그럴 때 그는 억지로 회의를 이끌어나가기보다는 회의를 포기하고, 혼자 집에 가서 아이디어를 생각해오는 방법을 애용했습니다. 나오지 않는 아이디어를 그 자리를 고집하며 끄집어내는 것은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김병욱 PD는 혼자 생각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과 혼자 생각하는 힘에 대한 믿음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어 더욱 효과적인 은둔형 사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곧 자신의 생각에 대한 자신감과 창조적인 힘으로 이어졌습니다. 꼭 규격화, 단체화 된 것이 아니더라도 상황과 사람에 따라 자유로운 것이 더 잘 맞을 때가 있습니다. 때문에 무턱대고 기발하다며 일종의 기획법을 따라하는 경우보다, 연출 혹은 기획에 앞서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고 자신의 맞춤형 기획법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김병욱 PD가 기존과 다른, 파격적인 시트콤을 만들 수 있었던 데에는 은둔 지향성 사고 외에도 무엇이 있었을까요? 우선 사고의 역발상입니다. 남들처럼 무턱대고 색다른 기획을 떠올리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순서를 재설정해 남들이 생각하는 것부터분류한 뒤 그것을 피하는 방식으로 타인의 경우의 수를 모두 파악했고, 기획의 창의성 향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연출자로서의 책임감입니다. 횟수, 시간의 제한이 엄격한 시트콤에 대해 무한 책임감으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당하고, ‘매회 완결된 이야기 구조와 스튜디오 촬영이라는 시트콤의 본령을 위해 대본의 시작부터 현장에서의 연기지도까지 많은 신경을 쏟았습니다. 씬을 짤 때에는 신속하게 진행하되 연기자가 겪었던 일이나 떠오른 일련의 생각 등을 대본에 넣으면 연기자가 대본에 더 몰입하고 애정을 느낀다는 점을 이용해 대본의 생동감을 높이고, 현장에서는 대본의 암기를 강요하기 보다는 연기의 전후 맥락을 설명하고 그 심정을 더듬어가도록, ‘연기자가 그 상황에서 느끼게 되는 심정이 진심으로 마음에 닿을 때까지 기다리는연기 지도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이처럼 김병욱 PD의 시트콤은 ‘20년 후에 봤을 때도 가치가 있어야된다는 신념과 잘 팔리기도 해야한다는 생각의 조합을 기획의 바탕으로 두고, PD 개인의 자아성찰을 통해 채택한 본인의 성향에 가장 알맞은 아이디어 씽킹을 진행함으로서 시트콤계의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었지만. 

 

< 적응하라, 그 뒤에 펼쳐라 >

미디어의 역사는 곧 재매개의 과정입니다. 모든 미디어가 기존의 미디어를 차용하고 참조해 개선해나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재매개의 가장 좋은 예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바로 박중민 PD개그콘서트입니다. 현재에는 그 위상이 얼마 떨어졌지만, 한 때 월요일의 시작을 개그콘서트의 엔딩 음악 연주로 구분한다는 농담이 만연했던 만큼 코미디 프로그램계의 가장 든든한 주축이었습니다. 개그콘서트가 그러한 위상을 갖게 되기까지에는 재미디어화가 컸습니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멸종 위기이던 그 예전 당시, 박중민 PD는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기존의 코미디 프로그램의 실패 이유와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발로 뛰었습니다. 인기를 끌던 소규모 코미디 공연들을 방문하고, 이를 관람객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선에서 바라보기 위해 카메라를 가져가 녹화한 뒤 집에서 보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공연이 아니라 TV라는 방송의 개념에서 코미디 공연이 프로그램보다 사랑받는 이유를 탐색하기 위함에서였습니다

이후 버라이어티에 비해 열등한 것, 작위적인 것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인식을 탈피하기 위해 고급스러워보이는 공연적 요소들을 많이 부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방송 세트를 세울 때에도 관객이 오래 기다리지 않도록 신속하고 지속적인 진행을 보였으며, 밴드를 투입시켜 코너마다 연주시킴으로써 음악적인 요소를 통해 전체 프로그램 흐름의 완급을 조절했습니다. ‘콘서트라는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미디어를 재미디어화해 개그콘서트라는 새로운 미디어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옛날 코미디 프로그램과의 비교를 통해 조명과 객석 색깔부터 배열, 방청객의 방식까지 하나하나 따지며 변경시키는 등 젊은 사람들을 타켓으로 정통 코미디가 가졌던 요소들을 버렸습니다. 박중민 PD가 이 아이디어를 얻었던 원천은 특이하게도 불안감이었습니다. 불안감에서 비롯된 꼼꼼하고 철저한, 거듭되는 확인과 확인이 프로그램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저의 경우 연출에 있어 불안감을 느끼더라도 이를 연출에 이용할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꼼꼼한 연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연출을 할 때 드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다른 관점으로 전환해서 활용할 수 없는지 생각해보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개그콘서트는 여러 코너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초기에는 이러한 코너들마다 코너장을 두고 장들이 멤버들을 데리고 아이디어 회의를 하거나 프로그램을 작가와 구성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으나, 똑같은 패턴들의 반복과 리더들의 안일함으로 인한 창의적 아이디어의 부재라는 한계를 느끼고 전체 회의 시스템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일의 진행에 있어 어떠한 한계점이 느껴진다면 신속한 보완과 변경으로 실패를 방지한 것입니다. 또한, 빠르게 변동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레 역할이 맡아지더라도 연출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제작진들에게 새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하고, 결과물을 보이고,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어떤 아이디어가 있으면 이전보다는 쉽게 한번 해보도록 하게 했습니다. 이는 출연진에게도 이어져 출연진 간에 콘텐츠 경쟁을 점화시켜 보다 나은, 신선한 콘텐츠들이 생성되고 채택될 수 있도록 집단 시스템을 경쟁이라는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박중민 PD는 연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내가 만드는 것이 어떤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수준이 아닌, 감동이나 즐거움 등의 다양한 감정이나 긍정적인 효과 혹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을 기본 전제로 삼았기에 그의 개그콘서트는 코미디 프로그램계의 제2의 부흥을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매체는 빠르게 발달하고, 변화합니다. 수용자와 연출자의 경계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대 사회에서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수용자들의 욕구를 충실히 반영하는 것은 연출자로써 필수적인 역량이 되었습니다. 세월은 환경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 큰 그림을 보는 능숙한 수리공이 되어라 >

얼마 전 종영한 무한도전은 예능계의 손꼽히는 전설적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최근까지 김태호 PD 아래에서 운영되었지만, 가장 처음 무한도전을 기획했던 인물 중 한 명은 일밤의 연출자, 여운혁 PD입니다. 그는 어떻게 전설의 서막을 열 수 있었던 것일까요?

여운혁 PD수용자와 연출자라는 두 가지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모든 일에 거리를 두는 관찰자의 위치에 앉은 것입니다. 조직 또한 조직의 것이지 직원들의 것이 아니라고 바라보았고, 조직에 속하는 것조차 싫어했습니다. 그는 중요한 언론인의 구성요소로 자율성을 꼽았습니다. 김병욱 PD처럼 구성원들에게 제작 자율성을 부여하는 환경을 무척이나 중요시한 것입니다. 프로그램이 도전적이기 위해서는 관습적인 부분의 타파가 필요하다고 여긴 탓이었습니다. 그가 런칭한 프로그램 중 하나인 무릎팍도사는 초기에 다른 프로그램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는 제 3자의 입장에서 무릎팍도사와 다른 프로그램을 바라보았고, 자신의 기획법이 곧 프로그램의 특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웃음의 본질을 약간의 객관화에 두고, 현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객관화하는 방식을 통해 웃음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소격효과를 통해 연예인에 대한 극적 환영을 깨뜨리면서도 무대 위의 사건에 대해 새롭고도 낯선 태도를 갖게함으로써 관객의 감정이입보다는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종용한 것입니다. 말이 활자가 되는 순간에 문자의 의미 안에 갇히는 글 인터뷰의 토크쇼 형식이 아닌 매체의 특성을 고려, ‘영상매체에 걸맞은 토크 쇼형식으로 연예인과 MC가 사적인 농담도 주고받게 함으로써 시청률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연출을 하다보면 조직과 가치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고 보다 냉철한 태도로, 거리를 두고 자신과 현실을 관찰하고 자신과 주변의 모두가 득이 되는 것을 목표로 기획한다면 프로그램의 허점을 찾아내어 수리하고 업그레이드하는, 능숙한 수리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이 줄줄 새는 싱크대 하나를 수리하더라도 눈 앞의 수도관만 바라보면 제대로 고칠 수 없듯이 말입니다.

 

< 새 브랜드를 만들 것인가, 새 프로그램을 만들 것인가 >

제가 어릴 적, ‘케이블하면 떠올랐던 것은 만화영화를 틀어주는 투니버스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러한 인식은 불과 1~2년 전까지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현재, kbsmbc, sbs와는 다른 분위기와 색다른 프로그램 런칭으로 jtbctvn 등 여러 케이블 채널들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몇 년 전까지 케이블 계에서 눈 씻고 보기 힘들었던 시청률이 현재에는 심심치않게 보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중 하나인 도깨비같은 경우에도 지상파를 누른 시청률로 성공리에 종영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요

과거에는 프로그램 하나를 브랜드로 관리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다릅니다. 프로그램만이 아닌,‘채널전체를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치고 그 안의 요소들을 매니지먼트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 프로그램이라는 워딩을 내 일의 본일이라고 생각해야하는 것입니다. 명확하고 아이덴티티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그것이 곧 브랜드가 됩니다. PD에서 시작해 tvn이라는 채널을 총괄하는 경영자의 자리에까지 오른 이명한 PD는 이러한 마인드로 채널을 운영했기에 오늘날 케이블 방송의 인지도를 높인 주역 중 하나인 ‘tvn’이라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브랜딩을 정성적 지표인 수용자의 충성도와 정량적 지표인 시청률을 엮어내는 작업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소비력을 갖고있는 수용자는 누구인지, 충성도 높은 타깃은 어떤 층인지, 케이블만이 파고들 수 있는 지상파의 빈틈은 무엇인지 등이 tvn의 콘텐츠 마케팅이 성공했던 이유이자 핵심요소입니다. 또한, 이명한 PD는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던 음악적인 부분들을 창작의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성장과정이 일종의 미디어계에서의 ‘DNA’로 축적된 것입니다

진정한 연출은 미디어와 미디어를 넘나드는 입니다. 음악과 영상, 영상과 언어, 그리고 언어와 음악 사이를 말입니다. 이명한 PD는 음악과 언어를 합친 노래를 예능의 핵심이라는 점을 누구보다도 잘 깨닫고 있었고, 이를 예능 프로그램의 감칠맛 나는 편집에 활용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시트콤에서 꾸쥬워마걸이라는 밈으로 엔딩 bgm도 시트콤의 한 재미 요소로 활용했던 김병욱 PD, 여느 코미디 프로그램들과의 차별점 중 하나가 밴드라는 음악적 요소였던 박중민 PD에게도 보여진 모습들이었습니다. 제가 PD분들과의 대화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이 바로 이 음악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저는 평소에 음악 감상을 즐깁니다. 길을 걸을 때나 심지어 밥을 먹을 때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기도 합니다. 보기에는 그저 음악을 즐기는 정도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음악을 들으며 그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 드라마의 한 장면을 그려보고, 주인공을 상상해보고, 노래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공간 속에서 연기하는 저 자신을 상상해보기도 하며 일종의 연출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떠오른 아이디어들은 끊임없이 저의 시놉시스 창고에 쌓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년에 제작했던 장범준의 봄비뮤직비디오 또한 계기가 봄비라는 음악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장면들을 직접 영상화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음악을 하나의 연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명한 PD가 연출에 가장 많이 반영한 자신의 성향은 디테일에 연연하기 보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큰 맥락을 주요시하는 것, 그리고 논리보다 감수성과 뉘앙스 사이의 미묘한 공기의 흐름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흐름느낌을 중요시하는, 흐르는 물결 같은 연출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의 성향에 따라, 그가 프로그램을 마케팅할 때에도 홍보 문구에 대해 유의했던 점은 프로그램의 느낌을 얼마나 잘 압축해 전달하느냐였습니다. 촬영장에 직접 마케터들이 찾아가 프로그램을 실감함으로써 홍보 요소를 발굴함으로써 재기발랄하면서도 기대감을 심어주고, 프로그램의 느낌을 대강 전달해주는 태그라인이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tvn’은 타 방송사보다 마케팅 팀에 대한 신뢰와 비중 부여가 컸습니다. 콘텐츠의 기획부터 시작해 제작과 유통 등의 전 과정에 마케팅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콘텐츠는 이제 홀로 승부가 불가능한 시대가 왔습니다. 각종 포털의 tv 캐스트 등 플랫폼과 손을 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콘텐츠의 유니크함만을 고심할 것이 아니라 나아가 유니크한 미디어를 생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특히 짤이나 명장면 하이라이트 만을 짧게 짧게 잘라 시청하는 것이 유행인 모바일 미디어 등지에서는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동안 콘텐츠를 최대한 어필해 스쳐가는 고객이 아닌, 모바일의 짧은 부분 뿐 아니라 이후 콘텐츠의 전체를 감상하는 주 고객으로 만들 것인가를 중점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이 과거 일부 계층을 겨냥하고 제작되었었다면, 지금은 대중 매체의 넓은 보급과 발달로 인해 전 연령대를 포괄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입니다. 그러한 대세 흐름을 잘 타고 있는 tvn은 이미 성공한 콘텐츠 집단이라고 생각되며, 앞으로의 발전이 더욱 기대되는 브랜드라고 느꼈습니다.

 

< 작은 차이를 심화하라 >

사람마다 좋아하는 일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대중적이지 않은 것을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즐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최영인 PD가 좋아한 것은 사람들에게 힐링의 순간을 안겨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녀의 바램은 그대로 프로그램 연출에 반영됩니다.

힐링캠프’, ‘동상이몽’. 최영인 PD가 연출한 대표적 두가지 힐링 프로그램입니다. 특히 힐링캠프는 대중적이지 않았던 힐링이란 단어를 사회에 널리 퍼트린 촉진제가 되어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최영인 PD는 이러한 힐링 프로그램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에 어떤 방법을 사용했을까요?

바로 작은 차이의 발전과 확장입니다. 최영인 PD가 연출했던 프로그램들은 버라이어티 포맷이 아닌 단일 포맷이었습니다. 단일 포맷이 롱런할 수 있는 방법은 시작점부터 종점까지 미세한 발전과 차이를 거듭하는 것입니다. 1화와 2화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고, 5화와 6화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고 그것들을 확장시키고 기뻐하는 과정에서 단일 포맷의 위험성인 단조로움이 극복되기 때문입니다. 프로그램 또한 끊임없이 변화해야 오래 유지될 수 있습니다.

또한, 습관화한 설문 조사로 프로그램의 포맷에 대한 패널들의 의견을 꾸준히 듣고 적용시킴으로서 최영인 PD의 연출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세대의 세대 간 격차를 줄이고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최영인 PD의 프로그램 연출법 핵심인 작은 차이의 심화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출현 유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프로그램에서 발견한 차이를 극대회시켰을 때에는 생판 다른 새로운 프로그램을 생성시킬 수 있지만, 작은 차이라고 해서 무시하고 넘겼다간 새로운 프로그램이 생기지 않고 정체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의 차이를 통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하나의 미디어로 또 다른 미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떠올랐습니다. 이는 기존의 미디어에 대한 고찰을 통해 새 컨텐츠를 제작하는 재미디어화 와도 관련이 제법 있다고 느껴집니다.

 

< 아이디어는 멀리 있지 않다, 라고 느꼈다 >

갑자기 아이디어를 제시하라고 누군가가 요구한다면, 대부분이 당황하기 일쑤입니다. 저 또한 그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기존의 연출에서도 찾아낼 수 있고, 저 자신에게서도, 혹은 주변의 일상에서도,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 속에서도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아이디어입니다. 꼭 플러스(+)의 환경에서만 아이디어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마이너스(-)의 환경에서 불편한 점을 극복하고 싶은 대안을 떠올린다면, 그 또한 아이디어입니다. ‘아이디어에 대한 거리감을 지운다면, 누구라도 창의적인 발상과 연출이 가능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 예능 PD들은 드라마 PD나 영화감독보다 쉬운 직업이 아닐까?’, ‘예능 연출은 그저 재미있게 찍으면 되는거지 심오한 어떤 의미가 필요있나?’라는 편협적인 생각을 품고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직 PD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주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드라마보다 현장에 몰입하게 만들기가 까다로워 패널들의 웃음에 시청자들이 함께 웃을 수 있도록 여러 요소를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나, ‘진심으로 터지는 웃음이라는 것을 각박하고 서로 소원한 사회에서 만든다는 것이 꽤나 고충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마냥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케이블 방송국들이 의외로 규율적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능 PD와의 대화를 통해 단순히 촬영 현장에 대한 후기나 후일담이 아닌, ‘연출가라는 자리의 고충과 그들의 원동력인 시청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함께 공감하는 기회를 가진 것 같아 뜻깊었습니다. 두 번 세 번씩 읽으며 내 자신이 PD가 된 듯한 여운을 좀 더 느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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